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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owing posts from 2019

위대한 개츠비

위대한 개츠비 F. 스콧 피츠제럴드 | 김보영 옮김 F. 스콧 피츠제럴드의 소설 '위대한 개츠비' 는 1925년 출간되어 1922년 뉴욕과 롱아일랜드를 배경으로 '재즈 시대'의 화려함과 그 이면의 허무함을 그린 작품입니다. 1차 세계대전 후 경제적 번영과 금주법으로 인한 혼란 속에서 피츠제럴드는 물질주의와 도덕적 타락을 목격하고, 이를 소설에 담았습니다. 1920년대 미국 사회의 화려함과 그 이면의 허무함, 그리고 아메리칸 드림의 본질에 대한 깊은 질문을 던지는 작품입니다. The Great Gatsby F. Scott Fitzgerald | Translated by Kim Bo-young F. Scott Fitzgerald’s novel The Great Gatsby was published in 1925 and is set in 1922, against the backdrop of New York and Long Island. The novel portrays the dazzling splendor of the "Jazz Age" while also exposing the emptiness that lay beneath. Amid the economic prosperity and turmoil caused by Prohibition following World War I, Fitzgerald witnessed materialism and moral decay, which he captured in this novel. The Great Gatsby delves into the extravagance of 1920s American society while raising profound questions about its underlying emptiness and the true nature of the American Dream.

베일리 어게인(A Dog's Purpose: A Novel for Humans)

베일리 어게인(A Dog's Purpose: A Novel for Humans) W. 브루스 카메론 저 이창희 역 한 강아지가 네 번의 삶을 거쳐 자신의 존재 이유를 찾아가는 여정이 펼쳐집니다. 첫 번째 삶에서 '베일리'라는 이름을 얻은 강아지는 소년 에단과 깊은 사랑을 나누며 행복한 시간을 보냅니다. 에단을 기쁘게 하는 것이 베일리의 가장 큰 즐거움이었고, 둘은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존재였습니다. 하지만 슬픔 속에 에단을 떠나보내야 했던 베일리는, 에단을 위한 삶에 만족하며 평온한 죽음을 맞이합니다. 놀랍게도 베일리는 전생의 기억을 간직한 채 두 번, 세 번의 삶을 더 살게 됩니다. 매번 새로운 모습으로 태어날 때마다 베일리는 에단을 그리워하며 재회를 꿈꿉니다. 그리고 네 번째 삶에서 마침내 간절히 바라던 에단과 다시 만나게 됩니다. 긴 세월이 흘러 에단은 노인이 되었고, 환생한 베일리를 알아보지 못합니다. 하지만 베일리는 에단을 다시 만난 기쁨과 그를 도울 수 있다는 행복감에 벅차오릅니다. 다시 시간이 흐르고, 에단이 삶의 마지막 순간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리고 죽음을 앞둔 에단의 눈에, 늘 곁을 지켜온 강아지의 눈동자 속에서 마침내 베일리의 모습이 되살아납니다. "베일리, 넌 참 좋은 개야. 정말 고마워…" 에단을 기쁘게 하는 것이 베일리 생의 전부였다는 이야기는, 소설과 영화 모두 많은 이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습니다. 특히, 반려동물이 환생을 통해 주인을 향한 변함없는 사랑을 보여준다는 설정이 신선하게 다가왔죠. 베일리는 사랑을 주는 것에서 행복을 느끼는 존재였고, 그런 면에서 그는 누구보다 행복한 강아지였을 겁니다. 저 역시 베일리처럼, 전생의 기억을 안고 환생하며 사랑하는 사람에게 헌신하는 삶을 상상해 보곤 했습니다. 모든 사랑을 쏟아내며 행복을 느끼는 삶, 얼마나 아름다울까요. A Dog's Purpose: A Novel for Humans By W. Bruce Cameron / Tran...

Sunday, October 13, 2019 (A masterpiece that resonates every time, Carl Sagan's 'Pale Blue Dot')

언제 읽어봐도 명문, 칼 세이건의 '창백한 푸른 점'  "이렇게 멀리 떨어져서 보면 지구는 특별해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 인류에게는 다릅니다. 저 점을 다시 생각해보십시오. 저 점이 우리가 있는 이곳입니다. 저 곳이 우리의 집이자, 우리 자신입니다. 여러분이 사랑하는, 당신이 아는, 당신이 들어본, 그리고 세상에 존재했던 모든 사람들이 바로 저 작은 점 위에서 일생을 살았습니다. 우리의 모든 기쁨과 고통이 저 점 위에서 존재했고, 인류의 역사 속에 존재한 자신만만했던 수 천 개의 종교와 이데올로기, 경제체제가, 수렵과 채집을 했던 모든 사람들, 모든 영웅과 비겁자들이, 문명을 일으킨 사람들과 그런 문명을 파괴한 사람들, 왕과 미천한 농부들이, 사랑에 빠진 젊은 남녀들, 엄마와 아빠들, 그리고 꿈 많던 아이들이, 발명가와 탐험가, 윤리도덕을 가르친 선생님과 부패한 정치인들이, "슈퍼스타"나 "위대한 영도자"로 불리던 사람들이, 성자나 죄인들이 모두 바로 태양빛에 걸려있는 저 먼지 같은 작은 점 위에서 살았습니다. 우주라는 광대한 스타디움에서 지구는 아주 작은 무대에 불과합니다. 인류역사 속의 무수한 장군과 황제들이 저 작은 점의 극히 일부를, 그것도 아주 잠깐 동안 차지하는 영광과 승리를 누리기 위해 죽였던 사람들이 흘린 피의 강물을 한 번 생각해보십시오. 저 작은 픽셀의 한 쪽 구석에서 온 사람들이 같은 픽셀의 다른 쪽에 있는, 겉모습이 거의 분간도 안되는 사람들에게 저지른 셀 수 없는 만행을 생각해보십시오. 얼마나 잦은 오해가 있었는지, 얼마나 서로를 죽이려고 했는지, 그리고 그런 그들의 증오가 얼마나 강했는지 생각해보십시오. 위대한 척하는 우리의 몸짓, 스스로 중요한 존재라고 생각하는 우리의 믿음, 우리가 우주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망상은 저 창백한 파란 불빛 하나만 봐도 그 근거를 잃습니다. 우리가 사는 지구는 우리를 둘러싼 거대한 우주의 암흑 속에 있는 외로운 하나의...

신도 버린 사람들(Untouchables – The People Abandoned by God)

신도 버린 사람들(Untouchables) 나렌드라 자다브 저 강수정 역 ‘달리트(힌디어: दलित)는 접촉할 수 없는 천민이라는 뜻으로 남아시아, 특히 인도에서 힌두교의 카스트 계급제도의 모든 계급보다 아래에 위치한 하층민들을 뜻하는 말이다.’ ‘1950년 1월 26일, 공화국을 선포하는 인도 헌법은 불가촉천민의 폐지를 선언하였다.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며 신분과 종교를 근거로 차별받지 않는다고 명문화하였다. 그리하여 불가촉천민들은 그들의 침이 땅을 더럽힌다며 않도록 목에 걸고 다니라고 강요받았던 오지그릇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그리고 더러운 자신의 발자국을 지우려고 궁둥이에 매달고 다녔던 빗자루를 떼어낼 수 있게 되었다. 그렇다고 카스트의 차별이 사라진 건 아니었다.’ ‘오늘날 인도 인구는 세계 인구의 16퍼센트를 차지한다. 지구상에 살고 있는 여섯 사람 중 한 명이 인도인인 셈이다. 그 인구의 16퍼센트, 곧 인도인 여섯 사람 중 한 명인 1억 6500만 명이 불가촉천민이라고 불렸던 달리트(억압받는 사람들)이다. 3500년이 넘게 카스트 제도로 고통받은 그들은 이즈음 깨어나고 있다. 그들은 교육과 세력화, 민주주의를 바탕으로 카스트의 오랜 차별과 문맹, 가난에 맞서 싸우는 중이다.’ ‘불가촉천민들은 자신들의 사회적 신분을 바꿀 능력이 없었다. 카스트를 거부하고 싸울 근거도 없었다. 인간이 신의 섭리에 도전할 수 없다는 논리였다. 사회적이고 종교적 신성함에 근거한 그러한 주장은 카스트 제도의 영속성을 구축했다. 불가촉천민은 카르마(업, 운명)의 논리에 세뇌되어 살아왔다. 미천한 일을 하는 것은 모두 전생의 악업 때문이라고 믿는 것이다. 내세에서 좀 더 나은 삶을 살겠다는 희망을 가지고 현재에 주어진 미천한 일에 최선을 다한다. 그것이 그들의 이승에서의 다르마(의무)였다.’ 현대 사회에서 정치와 종교의 분리는 일반적인 원칙이지만, 아랍 국가에서는 여전히 밀접한 관계를 유지합니다. 종교적 원리가 정치 형성에 영향을 미치고, 종교는 정치 ...

보헤미안 랩소디 (2018)

보헤미안 랩소디 감독: 브라이언 싱어 '랩소디 인 블루'가 아니라, '보헤미안 랩소디'. '보헤미안 랩소디'를 떠올릴 때면 언제나 조지 거슈윈의 Rhapsody in Blue 도 함께 생각납니다. 하나는 록이고, 다른 하나는 클래식이죠. 리스트의 헝가리 광시곡 이 유명하지만, 일반적으로 '헝가리 랩소디'라고 부르지 않고 '헝가리 광시곡'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거슈윈의 Rhapsody in Blue 는 '블루지한 광시곡' 같은 표현 없이 그냥 '랩소디 인 블루'라고 부르죠. 이쯤 되면 "그럼 광시곡이란 무엇인가?"라는 의문이 들 수 있습니다. "랩소디(Rhapsody)는 악곡의 형식 중 하나이다. 광시곡(狂詩曲)이라고도 한다. 이 말의 본뜻은 서사시의 한 부분이라는 뜻이나, 음악용어로서의 랩소디는 주로 서사적·영웅적·민족적 성격을 갖는 환상적인 자유로운 기악곡을 의미한다." 위의 내용은 위키백과에서 가져온 정의입니다. 한자로 풀이하면 '미친 시(詩)의 노래'라니, 이 또한 독특한 표현이네요. 오랜 시간 동안 중국을 통해 유입되었거나, 혹은 일본 식민지 시대를 거쳐 들어온 서양 문명 속 단어들은 본래 의미와 다르게 해석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각설하고... 전설적인 록 그룹 퀸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는 솔직히 조금 아쉬웠습니다. 프레디 머큐리 역을 맡은 라미 말렉이 최선을 다한 것은 느껴졌지만, 프레디의 강렬한 카리스마를 완벽히 표현하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퀸을 보고 자란 세대 입장에서는 "과연 프레디를 연기하는 것이 가능하기나 할까?"라는 의문이 들 수도 있을 겁니다. 또한, 영화 속에서 퀸의 다른 멤버들이 지나치게 평범하게 그려진 점도 불편하게 느껴졌습니다. 각 멤버의 인기가 얼마나 대단했었는데, 그런 식으로 표현된 것이 아쉬웠습니다. 퀸의 음악과 함께 ...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조세희 소설집 가장이라는 생각을 하지 마라. 그러면 꿈을 꾸지 않을 거다.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네 책임이 무거워졌다는 생각은 아예 하지도 마라. 우리의 침묵은 우리의 권리에 상처만 준다고 그는 말했다. 이 책의 명성은 예전부터 들어왔지만, 그동안 읽을 기회가 없었습니다. 책을 펼쳐 보았을 때,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과 다른 부제의 글들을 제목으로 하는 짧은 단편 모음집인 줄 알았지만, 그렇지 않았습니다. 하나의 주제를 중심으로 처지가 각기 다른 인물들의 이야기가 서로 맞물리며 전개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1970년대, 무엇 하나 편하지 않고 힘들기만 했던 달동네의 이야기, 그리고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이 담겨 있었습니다. "우리의 침묵은 우리의 권리에 상처를 준다"고 하지만, 때로는 그 침묵을 깨는 일이 더 큰 비참함과 죽음을 초래하기도 합니다. 결국, 많은 경우 가지지 못하고 산다는 것은 그저 힘들고 고달픈 일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The Dwarf Who Fired a Little Ball A Collection of Stories by Cho Se-hee "Do not think of yourself as the head of the household. That way, you won't dream. Do not even consider that your responsibilities have grown heavier now that your father has passed away." "Our silence only wounds our rights," he said. I had heard of this book’s reputation for a long time, but I never had the chance to read it. When I first opened it, I assumed it w...

아쿠아맨 (2018)

아쿠아맨 감독: 제임스 완 ‘아쿠아맨’. 개봉하자마자 보고 싶었지만, 시간이 없어 보지 못하다가 며칠 전에야 드디어 보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영화의 줄거리 흐름이 교차 편집되어 있어 다소 정신이 없었지만, 곧 익숙해졌습니다. 재미있었냐고요? 네, 사람들의 입소문처럼 충분히 재미있었습니다. 대체로 입소문은 꽤 정확한 편이지요. 그리고 계속해서 부진했던 DC 코믹스가 원더우먼 으로 가까스로 부활한 후, 아쿠아맨 이 그 저력을 다시 한번 보여준 신호탄이 된 것 같기도 합니다. 아쿠아맨 역을 맡은 제이슨 모모아의 몸매가 대단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보셨나요? 제 생각에는 물론 좋은 체격을 가졌지만, 헐리우드에는 근육질 배우들이 워낙 많다 보니 특별하게 느껴지지는 않았습니다. 도대체 왜 그렇게 대단하다고들 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오히려 제 입장에서는 제이슨 모모아의 휘날리는 긴 머리가 더 부럽더군요. 만약 근육미를 논하자면, 차라리 울버린 을 연기한 휴 잭맨의 몸이 더 멋있다고 생각합니다. 메라 역을 맡은 앰버 허드의 경우, 다른 영화에서는 매력적이고 고혹적인 모습을 자주 보여주었는데, 이번 작품에서는 그런 매력이 잘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감독의 연출 탓일까요? 아니면 원래 연기 스타일이 다소 평범했던 걸까요? 잘 모르겠습니다. 그녀의 출연작들을 다시 한번 살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한, 영화에서 여왕 역을 맡은 니콜 키드만의 역할이 조금 아쉬웠습니다. 그다지 중요한 역할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너무 거물급 배우가 캐스팅되었다는 점이 이유입니다. 차라리 인지도가 중간 정도 되는 배우였다면 충분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쿠아맨의 아버지 역할을 맡은 배우처럼 말이지요. 검색해보니 이름이 타무에라 모리슨이라고 하더군요. 조금 생소한 이름이지 않나요? 찾아보니 뉴질랜드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이력이 있었습니다. 아마도 뉴질랜드 원주민 출신이 아닐까 싶습니다. 여담이지만, 뉴질랜드가 배출한 가장 유명한 스타는 단연 ' 키리 테 ...

Tuesday, July 30, 2019 (Does religion save humanity?)

종교가 인간을 구원한다고? 아니, 그렇지 않아. 사실 구원 이라는 단어 자체가 필요 없을지도 몰라. 결국 문제의 근원은 '나' 야. 모든 문제는 내가 만들어낸 것이고,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도 나뿐이야.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굳이 '구원' 이라는 말로 치환할 필요도 없고, 그럴 이유도 없어. 종교는 문제를 풀어나가는 과정에서 도움을 줄 수 있어. 하지만 결국, 넘어진 자리에서 다시 일어나 홀로 서야 하는 것은 오직 나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이야. 인간이라는 존재가 다른 생물들과 가시적으로 구별되는 지점이 있어. 나의 생각과 행동은 본능적인 무의식의 흐름과 학습된 의식의 순서에 따라 끊임없이 '또 다른 나' 와 소통하고 있어. 내가 첫 호흡을 내뱉은 순간부터 나는 사회라는 집합체의 일원이 되었고, 끊임없이 학습해 왔어. 어쩌면 나는 이미 스스로를 해결할 수 있는 답을 알고 있었는지도 몰라. 다만, 행동하지 못했을 뿐이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행동하는 과정에는 사회적 약속이 따라왔어. 도덕과 규범, 이성과 체면 같은 것들이지. 이런 것들은 인간의 본능과 때때로 충돌하며 거추장스러운 굴레가 되기도 했어.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를 무시하고 행동할 수는 없었지. 이건 단순한 용기의 문제가 아니야. 그래서, 본능과 충돌하는 '또 다른 나' 는 언제나 고민하고 분주했던 거야. Does religion save humanity? No, it doesn’t. In fact, the word salvation itself might not even be necessary. Ultimately, the root of all problems is me . Every problem is something I have created, and the only person who can solve it is me. There is no need to replace the process of solving a...

Thursday, July 11, 2019 (The Thousand-Year Question)

어제 조정래 선생님의 신작 ' 천년의 질문' 세 권을 모두 읽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장편소설을 집필하시기 전과 후에 간간이 수필집도 내셨지만, 제겐 본의 아니게 소홀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대신 선생님의 소설이 출간될 때마다 다른 작가들의 작품보다 우선하여 먼저 읽어왔습니다. 전설적인 장편소설 ' 태백산맥' , ' 아리랑' , ' 한강' 이후 선생님의 소설은 주로 두세 권 분량으로 집필되며 예전보다 그 양이 줄어든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 깊이와 완성도는 이전의 대작들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앞서 출간된 ' 정글만리'  에서는 급부상하는 중국 경제와 시장에 대해, ' 풀꽃도 꽃이다'  에서는 무너져가는 한국 교육 현실에 대해 소설 형식을 빌려 이야기하셨습니다. 이번 작품 ' 천년의 질문'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날 한국 정치, 경제, 언론계의 현실과 그 문제들에 대응하는 시민단체의 역할에 대해 말씀하고 싶으셨던 것 같습니다. 어떤 비평가는 선생님의 최근 작품에 대해 "독자가 소설을 읽는 핵심 이유는 경제적 분석이나 정보 습득이 아니다... 미적 통찰이 부족하다." 라고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선생님의 작품을 좋아하는 저로서는 "그래서? 소설이 반드시 미적 통찰을 담아야 하는 장르인가?"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차라리 "문학상 받을 만한 작품은 아닙니다." 라고 솔직하게 말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요? 피식— 앞서 말씀드렸듯이, 선생님께서는 소설의 형식을 빌려 자신의 이야기를 전하고 계십니다. 작가가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방식은 소설이든, 수필이든, 논설이든, 칼럼이든 전적으로 작가의 몫입니다. 그리고 완성된 작품을 받아들이든 그렇지 않든, 그것은 독자에게 남겨진 몫이지요. 어느 시대에나 글을 쓰는 사람들은 존재했습니다. 시대의 흐름에 편승해 아부하는 글을 쓰든, ...

Saturday, July 06, 2019 (Is the concept of "common sense" really this ambiguous?)

'상식' 이라는 개념이 이렇게도 모호한 것일까요? 우리가 바라보는 세상의 사물들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존재합니다. 하지만 이를 대하는 태도가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상식의 범위를 벗어나 과격한 방식으로 드러날 때, 종종 긍정적인 의미로 쓰이는 '인간의 다양성' 이라는 표현마저 부정적인 의미로 변질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사람들은 인생이 힘겹게 느껴질 때, 대개 두 가지 방식으로 감정을 표출하는 듯합니다. 하나는 자포자기 , 다른 하나는 폭력으로 포장된 이기주의 . 자포자기는 연민을 불러일으켜 안타까움을 자아내지만, '분노' 가 내재된 폭력적 이기주의보다는 차라리 나은 선택일지도 모릅니다. 현대 사회에서 심화되는 양극화로 인해, 가진 자들이 없는 자들을 무시하고 경멸하는 태도, 그리고 소수자들에 대한 폭력이 점점 더 두드러지고 있습니다. 근대화 이후 강조되어 온 '인간의 다양성' 이라는 가치에 정면으로 반하는 이러한 현상들은 더 이상 간과할 수 없는 사회적 문제입니다. 신자본주의의 거대한 흐름은 레이건과 대처의 신자유주의 기조를 거쳐 더욱 조직화되고 거대해졌습니다. 혁명과 같은 거대한 변화가 없다면, 이 양극화는 결코 좁혀지지 않을 것입니다. 결국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은 그 틈에서 간신히 버티며 살아갈 뿐이죠. 그러니 열심히 살아야 합니다! 기회가 온다면 결코 놓치지 마세요. 많은 사람들이 불만을 표하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나요? 그것은 바로 자신이 공정하지 못한 대우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불평등을 인지하지 못했던 시절에는, 그저 묵묵히 살아가는 것이 가능했습니다. 매스미디어가 발달하기 전에는 부유층이 얼마나 잘 먹고 잘 사는지, 권력을 가진 정치인들이 얼마나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지조차 제대로 알 수 없었습니다. 그저 "저 사람 부자래, 집에 엘리베이터가 있대." 같은 소문만이 존재했죠. 그러나 지금은 다릅니다. 우리는 깨어나는 순간부터 ...

친절한 금자씨 (2005)

친절한 금자씨(2005) 감독: 박찬욱 예전에 이 영화에 대한 평이 별로 좋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내용도 가물가물해서 다시 한번 봤죠. 물론 사람들의 평가가 언제나 절대적인 것은 아니지만, 일반적으로는 존중할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일단, 영화의 시놉시스 자체가 클리셰에 가깝습니다. 반전도 없고(반전이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전개가 너무 뻔해서 박찬욱 감독이 연출력 하나로 영화를 끌어가려 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하지만 그 이상을 보여주지는 못했습니다. 예전부터 저는 박찬욱 감독의 색감을 좋아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색감은 사람에 대한 것이 아니라, 그의 영화 속 영상미를 뜻합니다. 하지만 친절한 금자씨 는 영상미 하나만으로 버티기에는 다소 부족했습니다. 또한, 다채로운 연기 스펙트럼을 요구하는 작품에 적합하지 않은 배우인 이영애의 연기 역시 보는 내내 어색하게 느껴졌어요. 문득 김혜수가 떠오르더군요. 김혜수 또한 특정한 이미지가 강해서 폭넓게 활용하기 어려운 배우 중 한 명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두 배우 모두 개인적으로는 아름답고 대단한 배우들이지만요. 이 영화는 올드보이 이후 작품이라 기대가 상당히 컸습니다. 저 역시 그랬고요. 당시 ‘복수 3부작의 완결편’이라고 홍보했었는데, 사실 복수 3부작이라는 개념이 박찬욱 감독 본인의 아이디어였는지, 아니면 제작진이 만든 컨셉이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 억지스럽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차라리 올드보이 로 복수 2부작을 마무리하는 것이 더 나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참고로, 복수 3부작의 첫 번째 작품은 복수는 나의 것 이라는 영화입니다. 여담이지만, 세 개라는 숫자에 집착하는 경향은 지금도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죠. 그리고 다시 보면서 잊고 있었던 배우들을 발견했습니다. 신하균, 송강호, 유지태, 강혜정, 윤진서까지... 많은 배우가 등장하더군요. 박찬욱 감독의 영화에 단 한 컷이라도 나오고 싶었던 걸까요? 아마 해외에서도 유명한 올드보이 의 영향이 상당히 컸겠죠. ...

Capharnaum (2018)

가버나움 Director: Nadine Labaki 영화는 참으로 지루했지만, 할 말은 정말 많았습니다. 할 말이 많지만 다 하려니 마치 소설 한 권을 써야 할 만큼의 분량이 나올 것 같고, 그렇다고 할 말을 하지 말자니 아무런 생각이 없는 사람처럼 느껴질 것 같았습니다. 다시 또 할 말을 해야겠다고 생각하니, 최소한 가버나움 이 가지고 있는 배경, 그에 얽혀 있는 지리와 역사, 성경과 예수님 이야기, 그리고 인류학적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는 인간, 즉 호모 사피엔스 에 대한 이야기까지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지금 다 언급하자니, 주제별로 생각이 너무 장황해서 정리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다시 생각해 보니, 그냥 조금씩 조금씩 빵조각을 뜯어 먹듯이 제 생각을 올려야겠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물론 앞으로의 제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신다면 흥미를 느끼실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상처받지는 않을 겁니다.^^ 일단 영화의 제목이 왜 가버나움 인지부터 알아야 했습니다. 왜냐고요? 궁금하잖아요! 가버나움 이라는 지명은 예수님의 공생애에서 빠질 수 없는 도시 중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더 궁금했습니다. 성경과 어떤 식으로 연관이 있을까 싶어서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버나움에서 정말로 많은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예수님께서는 가버나움을 향해 저주를 내리셨습니다. 성경에는 이에 대한 기록이 다음과 같이 남아 있습니다. ( 마 11:20)    예수께서 권능을 가장 많이 행하신 고을들이 회개하지 아니하므로 그 때에 책망하시되 ( 마 11:21)    화 있을진저 고라신아 화 있을진저 벳새다야 너희에게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라면 그들이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 ( 마 11:22)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두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 마 11:...

인생

인생  위화 장편소설 | 백원담 옮김 소는 밭을 갈아야 하고, 개는 집을 지켜야 하며, 중은 탁발을 해야 하고, 닭은 새벽을 알려야 하며, 여자라면 베를 짜야 하는 법. 그런데 너는 소 주제에 밭을 안 갈겠다는 거야? 이건 예부터 전해온 도리라고. 가자, 가자 사람이란 게, 일단 기생과 놀아났으면 그 다음엔 도박에 손대지 않을 수 없는 법. 여자와 도박은 팔과 어깨처럼 이어져 있어 뗄려야 뗄 수 없는 관계거든. 나중엔 도박을 더 좋아했고, 기생은 단지 한숨 돌리기 위한 것일 뿐이었어. 하지만 어버지 말씀은 무딘 칼로 목을 베이고도 머리가 매달려 있는 것처럼 날 고통스럽게 했다네. 옛말에 당장의 위급함은 도와도 가난은 돕지 않는다고 했네. 나는 자네의 위급한 사정을 도와줄 수 있을 뿐이지, 자네를 가난에서 벗어나게 해줄 수는 없네. 나는 그 비단옷을 잠시 걸쳤다가 금방 벗어버렸다네. 어찌나 불편하던지. 미끌미끌한게 꼭 콧물로 만든 옷을 입은 것 같더라구. 학교에는 열심히 공부하라고 보내는거지 뜀박질이나 하라고 보내는 게 아냐. 뜀박질도 배울 필요가 있나? 닭대가리도 뛸 줄은 안다구! 여자란 사람들은 한번 화가 나면 못 하는 일도 없고 못 하는 말도 없다네. 여자들은 하나밖에 몰라서 한 번 그렇다고 생각하면 누구도 마음을 돌릴 수 없는 법이야. 위화의 장편소설 인생 의 원제는 ' 산다는 것'  이라고 합니다. 위화의 작품은 허삼관 매혈기 에 이어 두 번째로 읽은 책입니다. 이 소설은 푸구이라는 노인의 일생을 담은 이야기로, 다 읽고 나니 ' 살아간다는 것' 또는 ' 산다는 것'  이라는 제목이 인생 이라는 제목보다 더 어울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뭐, 거기서 거기이지만 말입니다. Life A Novel by Yu Hua | Translated by Baek Won-dam "A cow must plow the fields, a dog must...